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녀디 야노시 (문단 편집) === 죽음(1456) === [[베오그라드 공방전|벨그라드 공방전]]은 후녀디의 가장 빛나는 승리였지만, 허무하게도 곧바로 찾아온 전염병으로 인해 야노시는 가장 빛나는 순간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후계자였던 장남 후녀디 라슬로가 세력을 이어갔지만, 헝가리의 기성 귀족들과의 권력 다툼 속에 반역죄를 선고받아 1년만에 처형당했고, 함께 갇혀있던 차남 마차시가 반란으로 풀려난 뒤, 외숙부 실라지 미하이(Szilágyi Mihály)[* [[블라드 3세]]의 후처인 일로너의 숙부이기도 하다. [[마차시 1세]] 즉위 수 년 뒤에 오스만군에게 사로잡혀 처형당하고, 그 후 마차시의 친정 시대가 시작된다.]에 의해 옹립되어 [[마차시 1세]](마티아스 코르비누스)로 즉위했다. 이는 헝가리 역사상 왕족이 아닌 사람이 헝가리의 왕이 된 첫 번째 사례였는데, 당연히 그 후녀디의 아들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당시의 어린 왕 라슬로 5세는 메흐메트 2세가 쳐들어오자 [[빈(오스트리아)|빈]]으로 몽진하면서 민심을 많이 잃었고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마차시 1세]]도 그 후녀디의 아들답게 명군으로 이름을 날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